집에 돌아 오니, 마눌님 왈 “오늘 갔던 거 무료야? 근데, 그거 왜 하는거야? 연사들이 자기자신을 홍보하려고 하는거야?”

… … …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사람에게 TED정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오픈소스와 위키피디아의 정신 같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왜 사람들이 힘들게 야학 선생을 한다고 생각해?”로 얼버무렸다. 마눌님은 대충 ‘묻지 말라는 얘기지?’로 이해했으리라.

 

* * *

 

오늘 TEDx Kwangwoon을 다녀왔다. 총 6개의 세션과 소셜파티로 이루어진 훌륭한 행사였다. 개인적으로 TEDx는 처음 가 봤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보고 들은 것, 생각들을 간략히 기록해 놓기로 한다.

 

강연 #1


장폴로 교수님의 샌드 페인팅. TEDx Kwangwoon 사이트에 동영상이 업로드되면 아이랑 다시 봐야 할 듯. 모래 그림은 일반적인 그림과 달리 순간의 예술이다. 모래란 어딘가에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느낌은 이랬다. 나무와 사람과 새, 영화필름, 다시 필름 속의 나무와 사람과 새. 장폴로 교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뭐 이런 거… 이런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고 싶은 소망을 영화 필름이란 가상의 공간에 담아 놓으려고 했던 것일까?

 

서명: Excuse me! Can I have an autograph of you. That was a fantastic performance. Thank you.

 

강연 #2


참석자들은 모두 김진오 교수님의 로봇이야기를 재미없어 하는 모양이었다. 옆에 계신 분은 코까지 골면서 ㅋ. 그런데, 난 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해서인지 너무 재미있었던 세션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로봇과 조금은 다르게 ‘인간과 일을 연결하는 것이 로봇이다’라고 정의했다. 인간과 로봇 사이에 대한 이해, 로봇에 대한 이해(메카트로닉스), 로봇과 작업 사이에 대한 이해(생산 자동화)를 모두 통틀은 것이 로보틱스의 영역이다. 인간 같은 로봇은 인간의 꿈인 동시에 로봇의 꿈.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로봇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

 

강연 #3


김치군의 ‘내 여행은 여전히 ~ing’라는 블로그로 2009년 대한민국 Blog Awards 대상을 수상하신 정상구님이 나오셨다. ‘보는 여행이 아니라, 경험하는 여행을 떠나라’라고 역설했다. 소셜파티에서도 이 분에게 말했지만, 난 이분이 정말 부럽다. ‘잘하는 일 = 지금 하고 있는 일 = 생계에 도움이 되는 일’ 이기 때문이다.

 

강연 #4


설치미술을 하시는 윤헤나님,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들도 가득한 작품들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자신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했는데—‘a. game & play, b. text analysis & reverse thinking, c. communication’—오늘은 이해를 못했다. 청중을 대상으로 한 창의성 실험에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렸다.

 

연 날리는 아이: 눈을 감아 보세요. 당신이 10살 아이였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때 무슨 놀이를 했죠? 그 놀이를 떠올려 보세요. 자~ 이제 눈을 뜨고 종이에 있는 사각형을 이용해서, 그 광경을 30초 내에 그려보세요.

 

갤러리 안을 정육점으로 꾸미고, 자신을 고기덩어리로 치장해, 자신을 관객들에게 경매 붙이는 설치 미술. 요거요거… ‘그럼 세상에서 바라보는, 금전으로 환산한 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내 연봉이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강연 #5


올블로그 박영욱대표님이 ‘사업(창업)을 하지 말라’라는 강연. 이건 사실 반어법이다. 구체적 비전과 전략, 끈기와 열정을 가진 자만이 창업을 하라는 것이다. “사업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헌신하고 혼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할 때, 아이가 훌륭한 아이로 자라듯이 말이다. 나 같이 벤처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항상 느끼는 내용들, 그대로를 재미있게 풀어 주셨다.

직원을 뽑고 유지 하는 방법에 대한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정말 소름이 돋고 말았다. 28살 먹은 저 사람 뱃속에는 40대 중년의 대표이사가 있는 듯. “회사에서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입니다. 개발도, 기획도, 디자인도 제일 못합니다. 반면에 제 직원들은 저보다 모든 면에서 더 잘 합니다. 그래서 더 잘하는 직원을 믿고 일을 맡깁니다. 그것이 직원들을 뽑고 유지하는 제 철학입니다.”

아참, 표철민대표님 성대모사한 것은 정말 비슷했다. 연사께서 뻘쭘 해 하셨는데, 난 혼자 웃었다.

 

강연 #6


2009년 KIPA에서 주는 올해의 IP상을 수상한 낭만공대생 황성재님이 연단에 섰다. 고2 꼴찌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를 입담을 담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장폴로 교수님의 샌드페인팅과 함께 꼭 다시 보고, 널리 퍼뜨려야 할 강연 중에 하나였다.

“20대의 실패는 의미 있는 것”. “무엇에 반응하여 가슴이 두근대는 것 =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 “No 1이 되지 말고, Only 1이 되어라”. “20대라면, 속도에 치중하지 말고, 멀리 보고 방향을 잡는 것에 치중하라”. “나에게 붙여진 태그를 만들라(이것 저것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 보다는 한 우물을 파라는 의미)”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긴다는 것, 그 일이 허망한 일이 아닌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물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 이 사람은 Douglas McGregor 교수가 말하는 전형적인 Y형인간일 것이다.

 

* * *

 

‘좋은 강연 잘 봤습니다.’ ‘준비하신 광운대학교 TEDx팀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행사를 지원하신 광운대학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부분을 좀 더 신경 썼으면 합니다.

 

광운대학교 학생들이 정말 부럽다. 정말 좋은 선배님들을 두었다. 그 훌륭한 선배님들이 자발적으로 연사로 나오신 듯 하다. 하지만, 다음 TEDx 행사는 ‘그들만의 잔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갈라파고스화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사에게 주어진 시간을 연사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TED 행사가 원래 이런 식의 진행을 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연사의 강연이 끝나고 나면 사회자가 질문의 개수를 제한하는 게 좀 이상했다. 보통 사회자는 연사가 시간을 너무 많이 초과할 때 다음 진행을 위해 끊어 주는 정도의 역할이랄까. 여러 질문자 중, 사회자가 질문자를 선택하는 것도… 멀리서 보기엔 심어 놓았다는 느낌이랄까.

 

TED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 받은 것만으로도  광운대학교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진다, 광운대학교 학생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도 참석했고, 강연 내용을 즐겼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조직해서 이런 좋은 행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광운대학교 TEDx팀이 학교를 설득하여 장소를 따내고, 학교 및 동문들의 펀딩을 받는데 엄청난 고생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는데, 하려는 얘기는 이거다, 오늘 강당은 너무 추웠다. 이왕 지원하는 거, 조금만 더 지원하지, 지원하고도 별것도 아닌 일로 이런 아쉬운 소리 들으면 기분 안 좋잖아…

 

덧글 2010-03-29

강연#4에서 금전으로 환산한 내 가치는? 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사는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가진 희소성이 다르기 때문… 아마 우리 가족이 날 가장 비싸게 불러주지 않을까 싶다. (오늘 아침 이런 소중한 생각을 일깨워 주신 박*호님,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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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ooVe 2010/03/28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저도 광운대학생으로써 뿌듯했는데.. 정말 춥긴 했습니다;;;
    후기 잘봤습니다~^^

    • Juwon 2010/03/28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날씨가 이상한거죠? 3월말에 털달린 옷을 입고 다닐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3월말에, 그것도 휴일날 난방을 가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겠지요. 감사합니다.

  2. rheezeun 2010/03/28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잘봤습니다 제가 쓴글을 보는것처럼 공감가는 내용이 많은 후기였습니다. ^^
    저는 창의력키우기 드로잉에서 네모난탁자에 마주앉아 소꿉놀이를 하는것을 그렸다는..ㅋㅋ

    • Juwon 2010/03/28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눈 감고 연사님의 나레이션을 듣고 있으니, 웬지 최면술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요 ㅎㅎ. 저는 저 그림 그리면서 그 때의 냄새까지도 떠 올랐답니다.
      연날리기라, 지금 생각해 보니 혼자놀기의 진수지요 ㅋㅋㅋ.

  3. violace7 2010/03/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강연을 쭉 한번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깔끔한 후기네요~ 솔직한 말씀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구요^^

    • Juwon 2010/03/2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감사합니다. TEDx에 Kwangwoon이란 이름을 달고, 강연분야와 참석자를 계속 넓혀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관계자분들이 보셨으면 조금 서운해 할 수도 있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준비해서 저 수준의 행사를 했다는 것은 정말... 짝작짝 :-) Coex Conference Center 같은에서 하는 행사랑 준비/진행면에서 별반 수준 차이가 없었습니다.

  4. 퀘스티오 2010/03/29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석했었는데..좋은 강의(?)였던것 같네요.ㅋ
    조금 늦게 참석했는데 그전에 했던 섹션들의 후기도 잘 봤습니다.ㅋ

    다음에 참여할땐 아는척 해볼수 있는 용기가 생겼음 좋겠군요.ㅋ

    • Juwon 2010/03/29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는 척'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트고,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으로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용기'라는 단어와 같이 쓰신 것으로 봐서는... 맞죠?
      그런 '아는 척'은 참 힘들지요. 저도 회사에서 구성원들간에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Nudge를 가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제가 낯선 이들과 같이 있는 공간에서 구성원이 되었을 때, 오픈 마인드로 먼저 '아는 척'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5. 수다공작소 2010/03/30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연은 좋았는데 소셜파티는 별로였어요. 소셜이라고 하기엔 너무 갈라파고스화였다고나 할까요 ㅋ.ㅋ;;

    날씨가 좀 추워서 안습, 황사가 심해 더 안습인 날씨였지만, 뭔가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딩, 고딩들도 봐도 너무 좋을 강의 같았어요.

    • Juwon 2010/03/31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보다 나은 다음 강연, 이번보다 더더더 나은 소셜파티를 기대해 봅니다. 다른 TEDx 행사들과도 경쟁관계가 형성되어 국내 TEDx 퀄리티가 계속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아마 이것이 TED에서 국내에서 TEDx를 준비하거나 시행하는 많은 Entity들에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게임이론을 통한 지속적 퀄리티 향상.
      아 그리고, 저도 다음 번엔 아이를 데리고 가볼까합니다. 이번에 아이들 데리고 온 아빠들 부럽ㅎㅎ.

  6. TEDxKwangwoon 김민희 2010/04/07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Juwon 님! 저는 TEDxKwangwoon 의 김민희 학생입니다. 이렇게 잘 정리된 후기가 있었다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장폴로 교수님 친필 싸인까지! 놀랍습니다.! 언빌리버블!
    그리고 이번에 많은 분들이 소셜파티가 너무 엉성하고 재미 없었다고 하셔서... 죄송합니다. 디렉터의 능력부족이네요. 다음 2회 때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연사님들은 지적하셨듯이 갈라파고스화 되어있는 점이 있음을 저도 알고, 저희 학교 말고, 좀 더 폭넓은 연사님을 모시고자 노력하였으나, 조금 서투르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다음 행사엔 이런 느낌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행사 당일에 추우셨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미쳐 그 생각까진 하지 못했네요.

    2회엔 더 나은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뜨거운 관심 그리고 채직질 감사합니다.

    그럼, 항상 행복하시구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 Juwon 2010/04/08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민희디렉터님, 준비하신 좋은 강연 잘 들었습니다. 더 나은 TEDx 로 계속 발전하길 바랍니다.

  7. 지나가는이 2010/06/10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성재님 강의는 아직인가요?